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미국 실무 협상팀을 이끌고 있는 성 김 필리핀주재 미국대사의 한국말은 유창하다. 그냥 유창하다기보다는 보통 한국 사람과 똑같이 말한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미국의 정책을 설명하고 미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대사로서 공식·비공식 행사에서는 당연히 영어를 사용했다. 이런저런 사적인 자리에선 한국말로 하다가도 급하면 영어가 먼저 튀어나오긴 하지만 한국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한다. 우리네 정서도 잘 알고 소주폭탄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느닷없이 협상 대표로 ‘징발’된 이유는 아무래도 미 국무부 내에서 그만큼 북한을 잘 아는, 무엇보다 한국말을 완벽히 이해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더 이상의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훗날 북한의 거짓 쇼로 판명나긴 했지만 2008년 6월 영변 냉각탑 폭파 때 현장에 있었고, 1990년 이후 원자로 가동과 관련된 기록 수천쪽을 받아 나오기도 했다.
이번 판문점 협상에서 통역을 두고 영어로 하겠지만, 그가 직접 한국말을 알아듣기에 대화 내용의 정확성은 물론이고 그들의 태도나 반응 등 비언어적 요소에서 얻어낼 것이 많을 것이다. 이 난해한 협상에서, 게다가 서로 수십년간 불신해 온 마당에 상대방 뜻을 오독(誤讀)하는 것만큼 큰 위험도 없다.
지난주 북한이 ‘정상회담 재고려’라는 비난을 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왜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북한의 말이 다르냐’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었다. 북·미 간 메시지 오독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김 대사의 북한 전문성과 한국어 및 북한 태도 등에 대한 이해도는 그가 아니면 발생할지도 모를 오독 가능성을 현저히 낮춰줄 게다. 더구나 80년대 중반 이후 계속 미국을 담당해 왔고 북한 외무성에서 가장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는 최선희 부상이 맞상대다. 둘은 그전에도 6자회담 등에서 자주 대화를 나눴다. 협상 결론이 어떻게 나든 상대의 뜻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실력은 서로가 역대 최강이겠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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