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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2015.09.09 14:54

"광야의 견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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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라이프 목회이야기(2) "광야의 견딤" 한명수 목사 (해밀턴 장로교회 담임)


 밀려드는 크고 작은 파도에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 선장처럼 그 동안의 이민 목회 과정을 거치며 내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 지고 자족해 지고 있음을 느낀다. 설교나 책으로 유명세를 타는 분들의 말씀이나 만남의 기회가 내 삶과 목회에 큰 울림은 되지 않는다. 홍수 때 식수가 더 모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작아지고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은 더 커져만 간다. 그래서 ‘내가 잘못 가고 있진 않구나.’하며 안도 하는 마음도 가져 보고, 사모함 속에 주님을 묵상도 하며 '목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 본다.


 목회란 "목사가 교회를 맡아서 설교를 하며신자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했다. 이민목회는 유학생활의 안내자로, 이삿짐도 나르는 도우미로, 운전기사로, 그리고 떨어져 있는 가족들의 빈 공간을 메우는 부성의 역할로, 때론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 의사소통을 돕는 일도 한몫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기고 간 빈자리를 보며 곤고함을 느낄 때가 많다. '언제까지 일까'하는 푸념도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목회의 일부이기에 긴 호흡을 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새벽시간은 행복과 위로의 순간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병으로 앓던 남편을 잃고, 넉 달 뒤에는 스물여섯 살의 아들을 사고로 세상을 떠나보내야 했다. 살아갈 소망을 잃은 힘든 시간이 흐른 후 "선생님,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라는 잡지사 기자의 물음에 그녀는 "그것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내 삶과 목회가 그들과 견줄 순 없지만 모든 어려움을 견디는 일임은 분명하다.


 ‘결과가 뭐냐’가 성공과 평가의 기준이 되는 세태 속에 교회도 이런 세상의 가치 판단에 동조하는 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자기들의 성과물을 통해 나를 드러내려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고 경쟁적으로 원색복음이니 보수신앙이니 하며 자신들의 선명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나 공동체성은 약해지고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더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을 찾느라 애쓰고 있는 것이 목회의 현실이 아닌가?


 다윗은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다. 여덟 형제들 가운데 막내였다. 그저 들판에서 양을 돌보는 목동이었다. 하지만 사자나 곰이 자기의 양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곧바로 뒤쫓아 가서 그들을 무찌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 살려내곤 했다.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지 못했음에도 스무 살까지 외로움 속에서 물맷돌을 던지며 음악적 감성도 키웠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한 분만은 그에게 마음과 시선을 놓지 않으셨다. 외로움 속에서도 성실함으로 견디며 터득한 노하우가 쌓여서 훗날 골리앗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사울이 제공한 갑옷과 무기를 사용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목회는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목회에서 예측 불가능한 사람들에 대한 유연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난 자기들의 행태는 보지 못하면서 불편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내 맘과 귀가 순해지기 위한 기도를 우선순위로 삼고 있다. 초등학교 교생실습을 하고 있던 큰 딸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 즉, 불편한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드러내 보라는 것이다. 아마도 소년 다윗 앞에 펼쳐진 수많은 시련은 바로 이런 기다림과 불편한 소리까지도 견딤의 훈련을 통해 극복되었을 것이다.


 모자란 탁구대 대신 일반 식탁에 넥타이를 풀어 네트 삼아 어린 아이와 놀아준 모습을 한 청년이 사진 찍어 보내준 적이 있다. 어린 아이를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처럼 사진에 비친 내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조건 광야생활을 견뎌 낼 순 없다. 다음 세대를 위한 적절한 시도가 작은 공동체에서 시도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거나, 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고 말하지 말고,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면 좋겠다. 조금만 맘을 열고 눈을 돌리면, 날 필요로 하는 곳에서, 지루함 속에 있는 청소년들을 작은 다윗으로 길러낼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지루함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연대(solidarity)라고 생각 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연대가 최우선일 것이다. 믿지 않는 이웃들과 지역교회들과 소통하며, 우리 끼리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겠다. 해밀턴 북쪽 지역의 교회 목회자 모임에 참석해보면 인근 지역에서 어떻게 협력과 상생의 길을 찾으려는 지를 볼 수 있다. 홀로 있음이 고립된 삶은 아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자신의 영적 침체기를 기도와 인내의 훈련으로 삼음으로써 그의 사역이 성숙하게 무르익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협력과 연대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함께 어깨동무해야 한다.


 난 가끔 해밀턴 근교 하카리마타(Hakarimata) 산을 오르는데 거기엔 천년 된 카오리 나무와 팔백 년 된 리무 나무가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진감이 적은 이민교회가 현실이지만 단순한 반복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지루함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은 경건생활의 지속일 것이다. 다윗이 처음부터 야생동물을 제압하진 못했을 것이다. 실수와 낙심 속에 쌓인 내공이 백성으로 하여금 환호케 했다. 큰 울림의 시작점은 내가 서 있는 현실이며 교회다. ‘언제 까지 일까’하고 생각하지만 이 일은, 주님 오실 때까지 내 맘과 귀가 순해지고, 다음 세대를 기대하며, 성실과 연대로 견뎌내고 이겨내야 한다. 버겁지만 '제가 목사랍니다.'라고 힘차게 외치며 지루함과 답답함이 군중들의 환호로 바뀌게 될 그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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