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와 함께하는 갈라쇼
2013년 4월 13일 가을볕이 가득한 날, 또 하나의 와이카토 한국학교 역사가 시작되었다.
행사일 약 한 달 전에 현지 임대학교인 해밀턴 크리스천 학교로부터 갈라쇼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았다. 그때만 해도 이 갈라쇼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또 우리 학교가 참여를 할 때 어떤 득과 실이 있는지 등등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힘들겠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곧바로 이어진 학교 교사회의에서, 대부분의 교사 의견은 당일은 학교를 사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안전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밖으로 나가 야외 수업을 하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교장인 나도 무엇보다 중요한 안전을 이유로 교사들이 모처럼 야외수업으로 눈을 돌렸기에 현지 학교에 미안했지만, 함께 교사들과 마음을 합했다.
이제 이 사실을 메일로 알리고 죄송함을 표했지만 매우 친절하신 키위 코어 교장 선생님은 나를 설득하느라 답 메일을 줄줄이 연속해서 3번이나 보냈다. 우리 한국학교 학생들 안전은 걱정하지 말라며 2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지만 단 한 번도 안전에 이상이 있었던 적은 없었고, 요소요소에 교사들이 배치되어 있기에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고민하다 난 그 메일을 그대로 우리 교사들에게 전달하며 함께 하자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대답은, 아무리 빌려 쓰는 학교지만 갑자기 나타난 키위 행사에 왜 우리가 꼭 함께 해야 하느냐며 우리는 한결같이 우리 한국학교 학사 일정대로 추진하길 바랐다.
난 또다시 현지 코어 교장 선생님에게 메일로 아무래도 이번에는 힘들 것 같다며 다음 기회에 함께 한다고 약속하고 친절하게 거절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코어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한인 학생들이 매주 토요일 자기네 학교를 사용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다며 이번 갈라쇼에 함께하면 더욱 멋진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꼭 동참해 주기를 애원(?)하였다. 이런 난처함이 또 있을까……
결국 난 우리 교사들에게 다시 한번 이런 현지 교장 선생님의 마음을 전하며, 다음 학기에 있을 타문화교환전통놀이를 이번 행사로 대체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 말에 모든 교사는 수긍했고, 대신 우리 아이들에게 마오리 게임을 알려달라고 조건을 걸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약 3주간에 걸친 서로의 팽팽한 줄다리기 협상은 타결되었고, 우리는 우리 한국 학교에 맞는 행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갈라쇼. 이것을 우리말로 굳이 바꾸자면 바자와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바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독특한 뉴질랜드 문화이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며 즐기는 행사이다. 이제 우리는 이 현지 문화인 갈라쇼에 동참하여 우리 것을 어떻게 알렸으며 또 키위 문화를 직접 접한 소감은 무엇인지 나누어보고자 한다.
준비 시간이 부족하였기에 우리는 간단한 메뉴를 선택했다. 우선 전통놀이로 투호, 윷놀이, 제기차기, 긴 줄넘기놀이, 굴렁쇠놀이를 준비했다. 줄다리기도 준비했지만, 키위들과 당기다 사고가 날까 봐 이번엔 접었다. 투호를 던지며 구멍에 넣느라 애쓰는 키위들이 한없이 예뻐 보이는 건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굴렁쇠가 제대로 안 걸려 이리 삐뚤 저리 삐뚤 굴러감에도 계속 도전하는 어린 키위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큰 윷을 던지며, 알록달록 제기를 차며, ‘꼬마야’ 노래 소리에 맞추어 긴 줄넘기 줄을 넘으며, 인도하는 교사들을 따라 웃는 키위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한복 입어보기에서는 왕과 왕비의 궁중 한복과 신랑 신부 결혼예복을 준비했고 일반 한복도 나이별로 남녀 모두 마련했다. 이 코너는 키위들처럼 1달러를 받기로 하였는데 맘 착한 울 외국인 반 교사들이 도저히 못 받겠다며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한복을 입혀 주었고 행진을 하며 사진을 찍게 하였다. 우리의 화려한 한복은 어디에 있어도 늘 사랑받는 의상이며 자랑스러운 대한의 전통의상이다.
강당에서는 우리나라를 알리는 홍보 영상이 행사시간 내내 관람자에게 제공되었다. 전부 CD 10개를 준비해갔다. 요즘은 이 홍보영상이 전과 다르게 아주 잘 나와 있다. 세련된 영상과 화려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은 키위들의 시선을 고정 시켰다. 특히 1950년 6.25 전쟁 시 가난하고 어려웠던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우방국 이미지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어 키위들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학부모 임원회에서는 호떡, 떡꼬치, 어묵이 오가는 키위들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커다란 호떡을 굽는 냄새가 옆에서 키위들 소시지 굽는 냄새와 불협화음을 내며 잘 어울렸다. 떡꼬치는 키위스타일로 고추장과 케첩을 혼합해 새콤매콤한 양념으로 너무 맵지 않게 입맛을 돋웠다. 어묵은 긴 막대기가 신기한지 하나씩 입에 문 모습이 새로웠다. 옆에서 직접 만든 머리핀을 팔며 북한 어린이를 돕는 교민들의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우리 학교에 올해 보배교사가 자원했다. 바로 와이카토 음대에 입학한 사물놀이 교사이다. 그 사물놀이 교사의 북 놀이 시범. 많은 사람 시선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북소리가 둥둥둥 울려 퍼질 때마다 내 마음 또한 울렸다. 커다란 북이 두 손의 움직임에 따라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춤을 추는데 사진을 찍는 내 마음도 함께 따라 움직였다. 아이들의 총명한 두 눈은 귀 따로 눈 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고국에 가고 싶은 내 마음을 나타내듯 하나가 되어 바라보았다. 우레와 같은 박수로 마감한 교사는 손이 까지고 어깨가 아팠지만 이내 웃음으로 ‘괜찮아요’를 연발한다. 참 고마웠다.
이제 우리는 약속한 마오리 게임을 배우기로 했다. 막대기 두 개를 가지고 서로 부딪히며 3박자 음악에 맞추어 마주 보고 게임을 하는 것이다. 친절한 키위 마오리 음악 선생님의 인도로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부터 배우고 막대기를 부딪치며 게임을 즐겼다. 이 게임은 서로 믿음 안에서 서로 알아주는 게임으로 뉴질랜드 로토루아나 민속 쇼를 공연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보이는 전통놀이이다. 비록 처음 하는 게임이라 막대기가 제 맘대로 움직이고 따로 놀았지만 새로운 게임에 우리 아이들의 환한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키위들은 흙 속에 묻혀있는 보물찾기, 얼굴 담아 물통 속 사과 꺼내기, 물총 쏘아 캔 쓰러뜨리기, 페이스 페인팅, 머리 땋기, 보트 타기, 고 카트 타기, 손수레에 아이 태우고 달리기, 바운싱 캐슬, 말타기, 진짜 차 부수어 스트레스 풀기 등등 아주 많은 게임이 준비되어 있었다. 또한, ‘누가 잘 만들었나’ 찾아내는 아빠들의 케이크 굽기 대회 및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 또 깡통랜턴 등 이름도 모르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현장에서는 현금을 취급하지 않았고 입구에서 현금을 1달러 구매권으로 모두 교환해 사용했는데 이 방법은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전통을 보여주고 또 키위 마오리 원주민 전통을 배우며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실제적인 행사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실시한 현지 학교와의 갈라쇼.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세계 한글학교에도 권하고 싶다. 대부분 현지 학교를 빌려 쓰고 있는 주말 한글학교의 현실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우리 것만 고집해서도 안 되며 그 나라 것만 옹호해서도 안 된다. 두 나라의 장점을 살려 대한민국 안에서는 못 얻는 세계 속의 한글학교 아이들로 키워내야 한다. 이제 다음에 갈라쇼를 하자고 하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셋방살이 설움에 억지로 응대하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색깔로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제대로 알릴 것이다. 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우리나라를 빛내는 진정한 갈라쇼를 진행하고 싶다. 행사를 위한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국의 향기가 찐한 여운으로 남을 수 있는 존귀한 행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