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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07:19

종교개혁 496 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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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

 

 

약 오백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조의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촉발된 이른바 ‘종교개혁’운동은, 그것이 진정한 개혁(Reformation)인지 아니면 단지 변형(Deformation)에 불과한 것인지 오늘날까지도 신구교 간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와 목회자들이 지적해 왔듯이, 그리스도교 내에서 일어난 16세기의 교회개혁운동을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독교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종교라는 배타적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여러 훌륭한 이웃종교가 서로 공존하고 교류하는 오늘날에는 적합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당시 유럽은 기독교세계였기에 교회개혁을 ‘the Reformation’이라고 부를 수 있었으나, 기독교와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의 세계종교는 몰론 토착종교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종교형태가 공존하여 종교박물관이라고 불리는 한국사회에서 16세기 교회개혁을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할 뿐 아니라 이웃종교에도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여 저는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를 앞으로는 ‘16세기 교회개혁’이라고 바꾸어 표현할 것을 한국 교계에 정식으로 제안하며 논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16세기 교회개혁자들은 ‘오직 ~만’으로 번역되는 다음의 다섯 가지 명제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서만),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만), Sola Gratia (오직 은혜만), Sola Fide (오직 믿음만),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이 ‘오직 ~만’이라는 명제들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 만연된 배타성과 독선의 교리적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개혁자들의 주장과 한국 교회의 인식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습니다. 이 신학적 명제들은 개혁자들이 살고 있던 그 시대의 사회배경 안에서 태동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개혁자들에 의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족할 뿐 당시 교회가 제시한 복잡하고 어려운 수련과정을 통과하고 허리가 휘도록 교회에 충성봉사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에 합당한 영광도 오직 하나님께서만 받으셔야 하며, 교황이나 사제, 또는 교회조직이 그것을 가로채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개혁자들은 우리가 따라야 할 신앙의 규범에 대해서도, 교회의 전통이나 교리에 근거하여 신도들에게 무거운 의무를 지워서는 안 된다는 의도로 ‘오직 성서만’을 주장했지만, 그것이 오늘날 신구약성서 66권에 절대가치를 부여하는 성서무오설의 교리를 지지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르틴 루터 자신이 믿음보다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를 평가절하했으며, 요한계시록을 성서에서 제외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힌 데서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당시 교회의 조직 내에 있었고 조직이 주는 여러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수혜자였습니다.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고 입을 닫고 살아가면 평생 명예와 부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예견되는 갈등을 피해가지 않고 교회개혁의 길로 나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십자가의 길이 그들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여 사람들은 그들에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오늘날 ‘개신교’라는 말로 번역되는 용어입니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지나 ‘종교개혁 500주년’이 4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우리 개신교회들은 과연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교회를 이루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16세기 교회개혁운동은 유럽 전체를 두 편으로 갈라놓았으며, 30년 동안 형제끼리 싸우고 죽이는 비참한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변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기득권세력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불행하게도 이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16세기 개혁운동의 후예인 저 역시도 “그것은 진정한 교회개혁운동이었다.”고 흔쾌히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르틴 루터를 지지했던 영주들의 의도, 오늘날 장로교의 시조가 된 쟝 칼뱅의 잔인한 제네바 통치이력 등 당시 개혁운동의 순수성에 대해서도 검토할 문제가 많지만, 무엇보다 오늘날 개신교, 특히 한국 교회의 배타적 행태를 보면, 과연 개신교의 태동이 그리스도교 전체에 순기능으로 작용한 것인지 깊은 회의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여 개신교의 교회개혁운동, 특히 한국 교회를 개혁하는 일은 우리 모두 평생의 과제로 삼고 풀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백년 전처럼 실제로 무기를 드는 과격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될 것입니다.

 

힘들고 더디더라도 끊임없는 의식의 개혁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평신도 교우님들’이 보편적으로 깨어나 진실을 알아갈 때 비로소 한국 교회의 개혁은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개혁자들에 의해 개신교회가 태동된 후로 오백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래된 조직은 나태와 안일, 그리고 조직의 생리에 갇혀 초기의 생명력을 상실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 교회는 치열한 내부개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이어진 나태와 조직 자체가 갖는 생리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으며, 오늘날 교회 내부에 깊이 배인 독선과 배타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독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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