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기다림 --- "백만송이 장미"

by lion red posted Oct 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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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가수 심수봉집사의 간증과 찬양으로 은혜받은 동영상입니다.

간증 중간중간 부르는 노래와 찬양.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넘 매혹적이라....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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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래글은 ===

 

해밀턴 주사랑 교회.

윤 준원 목사님 의 주일설교말씀 입니다.

 

행1: 12-26 창조적 기다림

 여러분은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애타도록 기다려 본 적이 있습니까? 그 기다림이 너무 간절해서 잠을 못 이루고 하루 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까? 저는 한 가지 소식을 듣고자 하여 반년 이상을 매일 새벽마다 눈물을 뿌리며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기다림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과 또한 그 기다림의 열매가 맺힐 때 너무나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시인 목사 용혜원님의 기다림이란 시가 있습니다. 용혜원 詩(배경곡-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소향) 삶이 있는 곳에는/어디나 기다림이 있네./우리네 삶은 시작부터/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위로 받고/기다려 달라는 부탁하며 살아가네.//봄을 기다림이/꽂으로 피어나고/가을을 기다림이/탐스런 열매로 익어가듯/삶의 계절은/기다림은 고통, 멋, 그리움이지 않은가?/기다림은 생명, 희망이지.//우리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인데/어느 날인가?/기다릴 이유가 없을 때/떠나는 것이 아닌가?//우리네 가슴은 일생을 두고/기다림에 설레이는 것/기다릴 이유가 있다는 것/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그것은 행복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위대한 스승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남겨진 제자들에게 아직도 주님의 음성이 귀에 쟁쟁합니다. 제자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시도하지 않습니다.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고집부리지도 다시 세금 걷는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갈 데가 없는 것도 아니며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스승님, 믿고 따랐던 주님의 명령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십자가 죽으심 이전 3년,부활 이후 40일간 받았던 사랑 때문에라도 딴 길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명령은 복종으로 요구되지만 사랑은 순종으로 끌어당깁니다. 오늘 성경은 제자들이 스승을 떠나 보낸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늘 모였던 다락방에 집결했다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제 자기 개성을 따라 모레처럼 따로 국밥처럼 흩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때까지 이 기다림의 시간을 조금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최상의 방법들을 찾습니다. 여러분, 뭔가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 기다림이 주님으로 인해 올 것입니까? 사실, 우리의 모든 바램은 주님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잠29:26) 내 생각 내 경험으로는 이 사람이 결정권자 인 것 같고 이 일이 이렇게 풀리면 될 것 같지만 실상 우리 모든 일의 궁극적 결정은 주님이 내리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당연히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께로부터 올 뭔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우리의 기다림이 어떻게 할 때 최상의 기다림, 창조적 기다림이 될 수 있는 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따라합니다.) 1. 최상의 기다림은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정보가 많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냥 기다리라고만 하셨습니다. 언제쯤 성령이 오실 지 어떤 모습으로 임하실지 모두 비밀의 안개에 쌓여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지만 동시에 앞날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전3:11) 그러므로 인생이 자신의 일을 모를 때, 만사가 불명확 할 때, 정보는 너무 없는 데 뭔가를 해야겠고 무얼 해야 할 지 뚜렷이 아는 것이 없을 때, 가장 확실한 것, 가장 영양가 있고 생산적인 한 가지 일, 그것은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알았고 아는 대로 바로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저들은 더 이상 내가 더 멋있는 제자다는 이슈 때문에 다투지 않습니다. 너하고는 기도도 못하겠어 그런 수준 낮은 차원을 이미 벗어났습니다. 다 마음을 같이해서 함께 기도에 몰입해 들어갔습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회가 연결되었습니다. 여러분, 개인 경건 시간 가지는 것 꼭 필요하고 권장 사항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가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모여 기도 하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가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인 것을 확인하게 되며 서로를 위해 중보 하면서 사랑의 엔돌핀이 생산되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의 이번 시즌 첫 대회 우승 및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빙상의 연기를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탁월했습니다. 닭에게는 미안하지만 군계일학이었습니다. Short program숏과 free program프리에서 2등과 자그마치 40점 이상의 점수차를 내며 자신이 세운 세계신기록을 다시 갱신했습니다. 이 경기가 끝나자 2, 3등을 했던 아사다 마오와 인도 마키 두 일본 선수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바꾸려 한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준비 해왔던 그대로는 김연아의 벽을 넘지 못한다는 절박한 현실적 인식 때문입니다. 누가 007 음악으로 그렇게 멋진 빙상의 쇼를 만들어 내려는 생각을 했겠습니까? 기술적인 것은 둘째 치고 창의적 발상에서 이미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 모두가 김연아만의 솜씨겠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보시는 중에 김연아의 코치 캐나다인 브라이언 오서 Brain Orser 가 자기가 뛰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연기에 함께 몰입해 있는 지 보셨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과 마음, 영혼과 영혼이 함께 공유된 세계를 갖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 둘 만 아니라 음악 의상 음식 … 아마도 모든 것들이 조합되어서 19세 소녀를 피겨 여왕으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한 예를 스포츠에서 들었지만 세상에서 연합하여 가장 강력한 힘을 내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전능자의 손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자들의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서로를 용서하게 하고 서로를 귀히 여기게 하고 자기는 낮추고 다른 이를 높이는 작업이 가능하도록 해 줍니다. 본문의 제자들과 모든 기도자들은 성령의 공식적 시대가 열리기 전에 바로 이 일에 진력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에 일어난 모든 부흥의 역사는 반드시 기도와 회개 후에 성령의 임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 주사랑 교회가 부흥하길 원하십니까? 다른 모든 외형적 부흥이전에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기도 모임들이 살아야 합니다. (따라 합니다.) 2. 기다림의 열매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름들 가운데 14절, <예수의 아우들>에 주목합니다. 이들이 어떻게 여기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이들이 전에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요7:4-5)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 이들은 단지 혈육의 눈으로 육체적인 관계로만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이 야심이 있다면 그래서 성공하시려면 온 세상의 주목을 받도록 자신을 드러내시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이 열리고 영적 이해력이 생기자 혈육으로서 형제의 범위를 초월하여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겨야 할 하나님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맴버들이 됩니다. 이는 긴 기다림의 열매입니다. 인간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더욱 믿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또한 누구보다도 더 선명하게 자신들의 눈으로 십자가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목격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그들의 이름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기다림의 대부분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기다리는 겁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장성하게 자라길 기다립니다. 우리는 어떤 이들의 믿음이 유약한 데 머물지 않고 딱딱한 음식들도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길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세상에 살면서 믿음의 자녀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다 단언합니다. 여러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빨리 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림의 열매가 맺힐 때까지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꽃도 나무도 자라 열매를 맺는 데 시간이 필요하거늘 사람이야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126:5-6) 오늘 본문은 이 기다림의 열매로 열 두 사도의 대열에 가입하게 된 맛디아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정말 성경에 단 한번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영원합니다. 맛디아는 돈 때문에 스승을 팔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룟인 유다 대신에 열두 사도의 자리에 들었습니다. 비록 단 한번 성경에 이름이 적혔으나 맛디아는 교회의 추천을 받은 두 사람 중 하나이며 기도 응답으로 주신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교회가 함께 인정한 일군입니다. 그는 어제 오늘 뭔가 티는 것이 있어 교회 일군이 된 것이 아닙니다. 21절 이하, 오래 오래 전부터 예수님의 주변에서 배움을 가져왔으며 항상 제자들과 더불어 교회 일군으로서 훈련되어 온 사람입니다. 여러분 제 말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교회의 일군은 인간적인 재주나 언변이나 처세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긴 기다림의 세월 동안 다듬어진 그 신실함을 하나님과 교회가 함께 증거할 때 그 사람들이 교회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묵묵히 제자도의 길을 걸어왔던 이 맛디아는 열두 사도로 편입되고 나서도 동일한 성실함으로 자신의 온 생을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 불태우다 영원한 하늘나라에 입성했다고!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이디오피아에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드렸다고 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와 함께 오늘 말씀을 맺습니다. 인기 가수 심수봉은 세 살 아기적에 아버지를 떠나 보냈습니다. 1.4 후퇴 때 북한에서 내려온 아버지가 재혼해서 60세에 낳은 아이가 심수봉이었는데 이제 막 아기가 한참 귀여울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심수봉의 어머니는 이상한 신흥종교를 믿는 분이셨다 합니다. 그래서 심수봉은 온갖 파란만장한 생의 굴곡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삶이 그렇다 보니 그냥 절에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도인의 경지에 이르도록 불교에 깊이 빠졌고 심령학이란 것에도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절대적으로 담을 쌓고 살았던 인생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친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배다른 크리스챤 언니가 있었는데 긴 기간 심수봉을 위해 기도해왔다고 합니다. 이 언니가 작정을 하고 한달 간 함께 숙식을 하면서 심수봉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심수봉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엄청난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되었고 쌓여왔던 한스런 삶과 죄악의 뿌리들을 쏟아내는 눈물을 흘렀다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복음으로 오신 예수님을 표현한 노래가 <백만송이 장미>입니다. 여러분, 강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유투브나 수영로 교회 등 교회 홈페이지들에서 심수봉의 간증을 한번 들어보시면 그녀에게 일하신 주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희 교회도 한번 모실 생각입니다. 제가 믿기론 심수봉은 성령과 깊게 연결되어 있으면 성령의 인도에 민감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남다른 삶의 모양을 갖고 있던 그녀가 오늘날의 그녀가 된 것은 그녀를 품었던 누군가의 기다림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기다림의 창조적 기능은 마음을 모은 기도와 사람을 세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기다림의 참 미학인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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