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당한 일본 '위안부 외교' (5월 4일 동아일보)
“돈 줄테니 추모비 철거를”
미국 지자체에 요구했다 퇴짜
미국 뉴저지 주의 작은 도시 팰리세이즈파크 시의 제임스 로툰도 시장은 지난달 말 일본 뉴욕총영사관으로부터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의아해했다. 한 번도 접촉이 없었던 일본 외교관이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며 찾아오겠다고 한 것.
실제로 1일 히로키 시게유키(廣木重之) 일본 뉴욕총영사 등이 찾아와 다양한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시가 추진하는 사업에 거액의 투자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벚꽃길 조성을 위한 벚꽃나무 지원과 도서관 장서 기증, 미일 청소년 교환 프로그램 신설도 제안했다.
히로키 일본 뉴욕총영사가 본론을 꺼낸 것은 그 이후였다. 그는 “팰리세이즈파크 시립도서관 앞에 건립돼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미일 양국 관계증진 프로그램에 중대한 걸림돌이 된다”며 철거를 요구했다.
로툰도 시장은 2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기림비는 전쟁과 인권침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에 꼭 필요하다. 앞으로도 반복될 철거 압력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역사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또 전쟁범죄 등 잘못된 과거는 재발하지 않도록 드러내놓고 교육해야 한다는 게 내 정치철학”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로툰도 시장은 “일본이 자금 지원을 대가로 기림비 철거를 요구한 것이 불쾌하다”고 말했다.
일본 자민당 의원 4명도 다음 주에 시청을 방문해 기림비 철거를 요구할 계획이다. 로툰도 시장은 “오면 만나겠지만 요구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팰리세이즈파크의 위안부 할머니 기림비는 한인유권자센터(KAVC) 주도로 한인이 많은 이곳에 세워졌으며 미국은 물론이고 서방권 전역에서 처음이었다. 지난해 12월 15일 위안부 할머니 두 명이 이곳을 찾아 “한국도 못하는 것을 미국 시민이 해주었다”며 오열했던 곳이기도 하다.
기림비를 찾는 미국 시민이 늘어나자 일본은 다방면으로 철거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맞서 KAVC는 위안부 결의안 미 의회 통과 5주년을 맞는 7월 31일까지 플러싱과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3개 지역에 추가로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플러싱의 한인타운에서는 미국 최초로 위안부를 추모하는 도로인 가칭 ‘위안부 기림길’을 만들기 위해 시 당국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
김동석 KAVC 상임이사는 “2007년 미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었을 때만 해도 꿈적하지 않던 일본이 기림비를 찾는 미국 시민이 늘면서 위안부 문제가 미 사회에 알려지자 강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